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크레타 섬 전투 (문단 편집) === 독일군 === 독일군은 주력 대부분을 소련과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어서 소규모 병력밖에 차출할 수 없었고, 설사 지상군을 투입한다 하더라도 영국의 지중해 함대가 기다리고 있는 바다로 뛰어나온다는건 자살행위였다. 때문에 독일은 공군 제7공수사단과 육군 제5산악사단으로 구성된 제11공수군단을 편성, 항공전력과 공수부대 중심으로 크레타 섬을 공략하기로 결정했다. 지휘관으로는 [[쿠르트 슈투덴트]] 공군 [[중장|대장]]이 [[군단장]]으로 임명됐다. 최초 투입된 부대들이 주요 비행장을 점령하고, 후속부대가 비행장들로 병력을 증파하며, 약간의 기계화부대는 징발한 수송선 및 동맹국 이탈리아의 협력을 얻어 해로로 수송, 공수부대와 합류하는 것이 작전의 핵심이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German_assault_on_Crete.jpg|width=800]] 머큐리라는 작전명이 부여된 크레타 침공에서 독일군 공수부대는 크게 3개 전투단을 구성, 각각 동쪽의 이라클리온, 중부의 레팀논, 서부의 말레메 비행장을 점령하기로 계획했다. 특히 서부전투단의 경우 말레메 비행장만이 아니라, 비행기로는 절대 수송이 불가능한 귀중한 전차와 중화기를 싣고 올 수송선단을 입항시킬 하니아 항만까지 확보해야 했다. 이들 중장비, 중화기의 수송을 위해 독일군은 [[이탈리아 왕립 해군]]의 협조를 요청했으나 이탈리아는 약간의 [[수송선]]과 [[어뢰정]] 등 소형함 20여 척을 내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독일 입장에선 대형함 몇 척이라도 나와서 지중해 함대를 유인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지만 타란토 공습으로 호되게 당한 이탈리아 [[해군]]은 여전히 항구에 짱박혀 있었다. 머큐리 작전은 5월 16일 발동 예정이었으나 항공작전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인 기상조건 문제로 연기되어 최종적으로 5월 20일로 작전이 실행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